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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으로 살아날래? 개인으로 죽을래?

기사승인 2024.02.23  00: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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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월드컵 때, 필자는 축구 중계 캐스터였습니다. 당시 방송사 중계 캐스터 중 막내였기 때문에 시청률 경쟁이 치열한 TV중계가 아닌 라디오 중계를 했는데 그 덕에 한국 대표팀의 경기를 중계할 수 있었습니다. 신나서 출장을 가는 필자에게 아내가 “제발, 집에서 축구 중계 볼 때처럼 흥분해서 아무 말이나 하지 마세요.”라며 신신당부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아내는 제가 축구중계를 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답니다. 왜냐하면, 국가대표 경기가 있는 날이면 마치 하나의 의식을 치르듯이 경건하게 TV 앞에 앉아서 맥주와 안주 일체를 준비해 놓고 시청을 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우리 선수가 실수를 하면 “저 X신 발이 거꾸로 달렸나? 어디다 차는 거야?”라는 말부터 시작해서, “저 포지션에서 뛸 애가 쟤밖에 없나? 아무개가 훨씬 나을 텐데 감독이 눈이 삔 거 아냐?” 등등 평소에는 듣지 못하던 남편의 과격한 말을 들으면서, 혹시 이 사람이 축구 중계를 하면 집에서 새는 바가지 들에 가도 샌다고 틀림 없이 말실수를 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랍니다.

다행히 2002년 월드컵은 시작부터 출발이 순조로웠습니다. 앞선 대회에서는 골문 앞에서 그렇게 똥볼을 자주 차던 황선홍 선수가 폴란드 전에서는 신기에 가까운 논스톱 슛을 정확하게 때려 넣었으니까요. 1994년 미국 월드컵 때, 골문 앞에서 계속 발야구를 하듯이 홈런을 날렸던 황선홍 선수의 과거를 기억하던 필자로서는 왼쪽에서 이을용 선수가 올린 크로스가 황선홍 선수의 발끝에 닫는 순간 ‘저걸 잡아 놓지도 않고 그대로 때려? 분명 땅볼이거나 홈런일 거야’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슛이 골망을 흔드는 모습을 보면서 찰나의 순간이지만 두 눈을 의심했습니다. 중계는 타이밍이 생명인데 아마 그때 제 입에서 “골~~~~~!”이라는 외마디 소리가 평소보다 0.1초 정도 늦게 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골문 앞에서 반 박자 빠른 슈팅을 해낸다는 것은 당시 한국 축구에서는 보기 드문 상황이었고 게다가 월드컵 같은 큰 무대에서 그런 멋진 장면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이 골 하나로 황선홍 선수는 이전의 수많은 실축들을 깔끔히 날려보내고 대한민국 최고의 공격수로 이름을 남기게 됐습니다. 

축구는 유난히 감정이입이 잘되는 스포츠입니다. 특히 국가대표간의 매치는 상대국에 따라 감정이 몇 배로 증폭되기도 합니다. 한일전의 경우 이기면 영웅, 지면 역적이 되는 일이 늘 되풀이됐습니다. 다른 나라의 경우도 우리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 않았습니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역대 최강의 전력으로 본선에 진출한 콜럼비아가 자책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일이 있었는데 자책골의 장본인인 안드레스 에스코바르가 월드컵이 끝난 후, 한 술집에서 시비 끝에 총에 맞아 숨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자중해도 모자랄 인간이 술집에서 웃는 모습을 보고 가해자가 화가 나서 시비를 걸었다고 합니다. 이성의 끈을 놓고 경기를 보게 만드는 것이 축구의 매력이지만 선수가 실수했다고 살인을 저지르는 지경에 이르면 어느 누가 마음 편히 운동을 할 수 있겠습니까?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최종예선 한일전에서 승리를 하고 금의환향한 국가대표팀을 취재하기 위해 선수들이 탄 버스에 올라타서 인터뷰를 했었는데 승리하고 돌아온 선수들인데도 긴장을 풀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이 갖고 있는 중압감이 상상을 초월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당시에는 그런 분위기가 이해되지 않았었는데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측은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기에 지면 졌다고 온 국민에게 욕을 얻어먹고 다시는 안 볼 사람들처럼 매스컴에서 그 난리를 치며 인격 살인을 서슴지 않다가도, 이기는 날에는 대통령이 전화로 축하를 해주며 청와대로 초청을 하는 나라에서 국가대표로 뛰려면 체력보다 굳건한 정신력이 더 필요했을 겁니다. 이런 일이 수십년 반복됐으니 선수들 가슴에 커다란 옹이 하나쯤은 모두 박혀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그러니 나 하나라도 일희일비하지 말자는 마음으로 요즘은 경기를 볼 때, 우리가 골을 넣을 때만 빼고는 쉽게 흥분하지 않습니다.

이번에 한국 축구가 64년 만에 아시안 컵 우승에 도전하면서 참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대표팀 내부의 내홍도 여과 없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보기에 더 불편한 것은 연예인, 정치인, 교육자 할 것 없이 저마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여과없이 표출하고 이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실어 나르는 매체들의 무분별한 행태였습니다. 잠시 잠깐만 내가 선수이거나 그의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이 사태를 바라본다면 이런 행위들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잔인한 것인지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주변의 스포츠 기자들이 하나같이 전술이 없는 것이 전술이라고 한탄하던 클린스만 감독이 마침내 경질됐습니다. 과거 축구 중계를 하던 시절 같이 해설을 하던 강신우, 김성남 위원이 종종 하던 말이 “축구에서 가장 저비용으로 단시간에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은 감독을 바꾸면 된다. 선수 서너 명 스카우트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크다.”였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우리는 게으르고 지도력이 없는 고비용 감독에 의해 단시간에 큰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만 이제라도 옳은 길을 찾을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한 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 꺼벙한 해외파 감독이 문제의 핵심이 아닐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팀으로서 회생하지 못한다면 개인으로 죽어야 한다. 그게 풋볼이다(Either we heal now as a team or we will die as individuals. That's football.)”

2000년에 개봉한 영화 ‘애니 기븐 선데이(Any Given Sunday)’에서 미국 풋볼 감독으로 열연한 알 파치노가 브레이크 타임에 라커룸에서 선수들에게 했던 명연설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지난 아시안 컵은 선수, 코치, 대한축구협회, 축구 전문가 또는 축구팬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 모두가 갈갈이 흩어져서 개인으로 죽음을 맛보는 지옥을 경험했습니다. 요즘 세태가 중간이 없이 양 극단으로 둘로 나뉘어 서로 헐뜯는 게 고질이 되어버렸지만, 우리가 2002년의 영광을 다시 한번 당당하게 맞이하고 싶다면 모두가 팀으로서 희생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오딩크는 희동구가 됐고, 황선홍 선수의 홈런 슛은 월드컵의 선제골로 빚을 갚았습니다. 지금은 비난보다는 위로와 격려를 해주는 팀 정신이 필요할 때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필자의 개인 의견이며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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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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