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5년 만의 만년필 여행

기사승인 2024.02.21  00:14:06

공유
default_news_ad1

제가 여행을 가는 것은 만년필 때문입니다. 저는 음식도 경치도 관심 없습니다. 만년필 종주국인 미국이 최고 선택지이지만 이번엔 일본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3박 4일 금요일 아침에 출발 월요일에 저녁에 돌아오는 일정이었습니다. 그렇담 우리나라엔 만년필 가게가 없나? 있습니다. 광화문 교보문고에도 있고 명동과 남대문에도 만년필 가게 있습니다. 굳이 일본으로 가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그 점포에서 파는 당점(當店) 한정판이 있고, 두 번째는 1990년대 한정판 명작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디즈니 100주년 기념 만년필   

첫날 맨 먼저 들른 곳은 하네다(羽田)공항에 있는 문구점 세 곳입니다. 먼저 간 곳은 이토야(伊東屋) 하네다 점 이었습니다. 큰 가게는 아니지만 일본 가게답게 통로는 좁고 물건은 많습니다. 이토야에서만 파는 수첩, 볼펜, 펜슬이 보였지만, 이런 것 때문에 일본에 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둘러보기를 몇 분 저는 사냥꾼처럼 먹이감을 찾아냈는데, 이토야 당점 한정 만년필이 내 눈에 쏙 들어왔습니다. 몸통에 미키마우스가 그려진 디즈니 100주년 이토야 한정판 만년필이 있었습니다. 점원이 “ 3개가 공항점에 배정되었는데, 며칠 전 1개가 팔리고 지금은 2개밖에 없습니다.” 이 말을 듣고도 망설이면 사냥꾼이 아닙니다. 

숙소는 우에노(上野)역 인근에 잡았습니다. 우에노는 우리나라 남대문시장이 있는 회현역과 비슷합니다. 백화점과 쇼핑몰이 있고 생선과 과일을 파는 재래시장과 수입 잡화점도 있습니다. 이 재래시장 안에 만년필 전문점이 몇 곳 있습니다. 20년 전엔 열 군데가 있었는데, 지금은 세 곳이 남아 있습니다. 이곳 점포들의 특징은 20% 정도 할인하여 만년필을 살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중 한 곳이 미도상사입니다. 수십 년 째 일본에 올 때 마다 매번 들리는 곳이지만, 주인이 알은 척을 하지 않는 것은 참 신기한 일입니다. 그게 뭐 중요한가요? 만년필만 있으면 되죠, 그래도 인사라도 하며 환하게 웃어주면 좋았을 텐데요.

이튿날은 우에노역에서 몇 정거장 떨어진 미쓰코시 백화점에 갔습니다. 2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백화점 4층 또는 5층에 가면 만년필을 파는 코너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간혹 몽블랑 부티크가 있는 곳이 있지만 여러 회사의 만년필을 파는 곳은 없습니다. 만년필을 좋아하는 사람으로는 아쉬운 부분이지요, 미쓰코시 백화점은 그런 아쉬움을 갖고 있는 분들이라면 들러볼 만한 곳입니다. 만년필을 파는 곳이 있고 별도로 만들어진 미쓰코시 한정 만년필도 있기 때문입니다. 

   
  긴자 이토야   

사흘째는 신주쿠(新宿)에 있는 중고 만년필 전문점인 킹덤노트에 갔습니다. 킹덤노트는 중고 만년필을 매입한 다음 상태에 따라 등급을 매기고 마진을 붙여 파는 곳인데, 헤밍웨이, 애거서 크리스티, 오스카 와일드 같은 1990년대 몽블랑 작가 시리즈 한정판과 워터맨 에드슨, 파카 듀오폴드 같은 회사들의 최상위 라인들이 있습니다. 이번 방문에 눈에 들어 온 것은 몽블랑 헤밍웨이였습니다. 만년필을 하는 사람들 이라면 누구나 다 좋아하는 한정판으로 1992년에 나왔습니다. 

사실 이번 여행의 절반은 헤밍웨이 때문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루페(확대경)을 꺼내들고 이리 저리 돌려 봤습니다. 중고였지만 새것처럼 상태는 좋았습니다. 하지만 일본 중고 만년필들의 문제인 펜촉에 손을 대 오리지널리티가 깨진 게 아쉬웠습니다. 

마지막 날은 긴자(銀座)에 갔습니다. 100년이 넘은 이토야 본점이 있고, 빈티지 만년필 전문점 유로박스(Eurobox)가 있습니다. 유로박스 역시 이번 여행의 나머지 절반이라고 할 만큼 기대를 갖고 간 곳인데, 2000년대 초부터 매번 올 때마다 들르는 곳입니다. 과연 이번엔 뭐가 있을까요. 들어섬과 동시에 100년도 더 된 건물 특유 냄새가 콧속에 들어오자마자 매번 그랬던 것처럼 심장은 뛰기 시작했습니다. 후다닥 단숨에 4층까지 올라갔고, 4평 정도 되는 가게 안은 만년필로 꽉 차 있었습니다. 내가 원하는 만년필이 있어야 하는데, 주~욱 30분을 둘러보자, 구석 한 귀퉁이에서 그 녀석이 보였습니다. 1930년대 ‘파커 듀오폴드 스트림라인 제이드 그린.’ 이건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내 것으로 정해진 것 같았습니다.

   
  1930년대 파커 듀오폴드 스트림라인 제이드 그린  

그밖에도 많은 곳을 갔습니다. 오모테산도의 서재관, 동경역의 마루젠, 롯폰기의 츠타야 등도 갔습니다. 나흘 동안 하루 평균 23,000보를 식당에서 점심은 주로 초코바를 먹었고 식당에 앉아서 밥을 먹은 건 딱 한 번이었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하루 종일 아무런 방해 없이 만년필만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하지만 20년 전보다는 10년 전, 5년 전보다는 지금이 만년필점과 만년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 마음 아팠습니다. 만년필의 내일은 어떻게 될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현재를 즐길 뿐입니다. “카르페 디엠” 

자유칼럼의 글은 필자의 개인 의견이며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박종진

<저작권자 © 자유칼럼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