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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련시간 총기 부속 분실 사건

기사승인 2024.02.19  00: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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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에는 고등학교 진학을 하면 교련수업을 받았습니다. 중학교 때는 교복 외 체육복만 구입하면 됐는데, 고등학교는 교련복을 따로 맞췄습니다. 농촌에서 교련복은 교련수업을 받을 때 입는 훈련복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집에서 농사일을 도울 때는 작업복 역할을 하고, 일요일 친구들끼리 놀러 갈때는 고등학생이라는 점을 알려주는 유니폼 역할도 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입니다. 대위로 전역한 교련선생님은 군댓말로 군기를 잡을 계획을 단단히 하셨습니다. 

1학년들의 교련수업은 제식훈련부터 시작합니다. 군복을 갖춰 입고, 얼굴이 비칠 정도로 거울처럼 닦은 군화를 신은 교련선생님은 항상 지휘봉을 들고 다니셨습니다. 지휘봉은 선도를 담당하시는 체육선생님이 들고 다니시는 회초리보다 작지만 굵고 단단해 보였습니다. 그것으로 제식훈련을  하다 오른쪽으로 돌아야 하는데 왼쪽으로 돌거나, 발바꿔 가기 등을 하다 틀리면 사정없이 등짝을 후려갈겼습니다.

땡볕에서 잔뜩 긴장한 얼굴로 구령에 맞춰 행진을 하다 갑자기 누군가 지휘봉에 얻어맞고 비명을 지르면 저절로 등에서 식은땀이 날 정도였습니다. “때려잡자 김일성!”이라고 외치는 함성이 작으면 전원 원산폭격을 시킵니다. 땅바닥에 머리를 박고 있으면 모래가 머리에 박히는 통증은 참을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너무 힘이 들어서 자신도 모르게 옆으로 쓰러지기도 합니다. 그러면 매처럼 달려들어 사정없이 후려갈깁니다. 몇몇을 시범케이스로 후려갈기고 일어나서 다시 구호를 외칠 때는 학급 전원이 목이 찢어질 정도로 악을 쓰게 됩니다. 

하루는 교실에서 총기분해 수업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 학교 무기고에 보관을 하던 총기는 카빈총이었습니다. 모두들 총기 분해가 처음이라서 잔뜩 긴장한 얼굴로 시범을 보이는 선생님을 열심히 바라봤습니다.

“이따가 올 테니까 3분 안에 총기를 분해하고 조립할 정도로 연습을 해라. 만약 3분 안에 조립을 못 하면 오늘 집에 못 갈 줄 알아라.”

다른 수업 때는 선생님이 교무실에 가시거나 잠깐 자리를 비우시면 웅성웅성 떠들기 일쑤입니다. 교련선생님은 워낙 무서운 분이라 모두들 최선을 다해 연습했습니다. 교련시간이 마지막 수업시간이라서 3분 안에 조립을 못하면 등짝이 남아나지 않는다는 긴장감과 두려움이 교실안을 팽팽하게 감돌았습니다.

이윽고, 선생님이 수업 종료 10분을 남겨두고 들어오셨습니다. 선생님은 여느 날과 마친가지로 지휘봉을 단단히 쥔 자세로 시간을 측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선생님이 안 계실 때는 3/2 정도 학생들이 3분 안에 조립을 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이 버티고 계시니까 긴장이 돼서 3분 안에 조립을 하는 학생들은 10명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졌습니다. 학생 한 명이 조립을 하다 말고 교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무엇인가 찾기 시작했습니다. 상황을 대충 짐작한 선생님께서 부속품이 없어졌냐고 대뜸 물었습니다. 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핀 종류의 부품을 잃어버린 학생은 파랗게 질린 얼굴로 대답도 못 하고 바들바들 떨기만 했습니다. 

“전쟁에서 총기 부품을 잃어버리면 무조건 사형이다. 반장은 부품을 찾은 후에 나한테 와서 보고를 한다. 그 전에는 오늘 밤이 새도록 집에 못 갈 줄 알아라.”

선생님은 그 말을 남겨두고 교실을 나가셨지만 학생들은 어느 누구 하나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부품을 잃어버린 학생을 원망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지도 않았습니다. 얼어붙은 얼굴로 칠판을 바라보기만 하고 숨도 크게 쉬지 않았습니다.

“자! 빨리 찾자!”

누군가 작은 목소리로 하는 말에 비로소 학생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책상과 의자를 치우고 바닥의 나무판자 사이를 꼼꼼히 살폈습니다. 부품이 작아서 옆으로 날아갔는지도 모른다는 누구의 말에 아예 근처의 책상과 의자를 모두 치웠습니다.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도 부품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구멍으로 들어갔을 수도 있잖아.”

뒷자리에 앉은 항생이 판자 틈새를 연필로 가리키며 금맥을 찾은 광부처럼 부르짖었습니다. 학생들이 앞을 다투어 틈새를 살폈습니다. 누군가 부품을 가져와서 틈새의 넓이에 맞춰봤습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이 들면서 실낱 같은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성질 급한 몇몇은 교실 밖으로 나가서 교실 바닥 밑으로 들어가는 사각형의 구멍 안을 살폈습니다. 교실 바닥과 땅바닥의 간격은 바짝 엎드려 기어 들어가야 할 정도의 넓이였습니다. 교실 바닥 판자 틈이 벌어진 부분에만 희미한 빛이 캄캄한 어둠을 직선으로 밝히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누군가 그 안으로 기어들어 가야 하는데 모두들 서로의 눈치만 살폈습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왜 제가 그 안으로 들어가겠다고 나섰는지 모르겠습니다. 

학생들이 박수치는 소리를 뒤로하고 정사각형의 작은 구멍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낮은 포복으로 부품이 있을만한 곳으로 기어가는데 막대기 같은 것이 손에 잡혔습니다. 들어 보니까 나무 막대기치고는 무게가 너무 가볍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상하게 소름이 쫙 끼치는 것을 느꼈습니다. 엎드린 자세로 플라스틱처럼 가벼운 물체의 양쪽 끝을 어루만지는 순간 뭉텅한 부분이 잡혔습니다. 사람의 뼈일 것이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습니다.

“우와 송장이다!”

내가 깜짝 놀라 비명처럼 내지르는 소리는 교실 밑바닥에 공간이라서 더 크게 울려퍼졌습니다. 너무 놀란 나머지 뼈를 버릴 생각도 못하고 게처럼 기어서 순식간에 밖으로 나갔습니다. 밖에서 안을 살피던 아이들은 벌써 저만큼 뒷걸음쳐서 두려운 얼굴로 저를 보고 있었습니다. 

“소, 소! 송장!”

저는 그때까지도 뼈를 들고 있었던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소리치는 말에 흙먼지와 거미줄이 범벅된 채 식은땀이 흐르는 얼굴로 뒤늦게 뼈를 치켜들었습니다. 엉겁결에 뼈를 학생들이 있는 곳으로 던져 버렸습니다. 

제가 뼈를 던지는 것을 보고 우르르 물러갔던 학생들이 조심스럽게 모여들었습니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팔뚝 크기의 뼈를 보고 누군가 사람의 뼈가 틀림없다고 단정을 했습니다. 졸지에 교실 밑에서 시체를 발견하게 된 저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뼈라고 단정을 내린 후에 갑자기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하나, 교련선생님께 보고를 해야 하나, 교실 밑에는 더 많은 뼈가 있다는 말인데, 우리가 지금까지 송장 위에서 공부를 했단 말이냐? 이건 살인사건이다. 자살하려는 사람이 교실 밑에 들어가서 자살할 리는 없다. 제법 논리적인 추론도 나왔습니다. 

곧이어 교련선생님은 물론이고, 교장, 교감, 서무과장하고 선생님들이 달려오셨습니다. 다시 누군가 교실 밑으로 들어가야 할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교련선생님이 저를 바라보셨지만 저는 죽으면 죽었지 들어가지 못한다고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결국은 학교 소사 아저씨가 손전등을 들고 들어가셔서 개 뼈를 주워서 나오셨습니다.

총기부속 분실 사건은 송장 사건에 묻혀서 끝이 났습니다. 해프닝으로 끝이 났지만 총기부속 분실 사건을 끝낸 1등 공신은 당연히 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날 저녁 총기부품을 잃어버린 학생 집에서 술 취한 교련선생님이 나오시는 모습을 봤습니다. 뒤에는 학생의 아버지가 나와서 연신 인사를 하며 배웅하는 모습이 좀 수상하게 보였습니다. 

수상했던 점이 풀린 것은 여름방학이 끝난 후였습니다. 송장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이 여름방학 때 2박 3일 전방 체험을 하고 왔다고 자랑했습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번다고 하더니, 놀라기는 제가 놀라고 혜택은 그 학생이 받은 꼴이 되어 버렸습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필자의 개인 의견이며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한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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