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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雪)이 일깨워준 올바른 눈

기사승인 2024.02.13  0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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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겨울에는 폭설이 자주 내렸습니다. 덕분에 마음이 설렐 정도의 눈부신 설경도 자주 만났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창밖에 펼쳐진 새하얀 세상에 감탄을 연발하곤 했습니다. 육순에 가까운 나이에도 설레며 첫눈을 기다리고, 눈이 오면 소녀처럼 감상에 젖습니다. 음력 12월생인 나는 어린 시절 생일날마다 ‘겨울 아이’라는 생일 축하곡을 들었습니다. ‘겨울에 태어난 당신은 눈처럼 깨끗한 나만의 당신/겨울에 태어난 사랑스런 당신은 눈처럼 맑은 나만의 당신~’

맑고 깨끗함, 이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일 것입니다. 온 세상을 뒤덮은 하얀 눈은 세상의 추한 모습을 다 가려주어 너무 아름답고 깨끗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런데 눈이 지닌 맑고 깨끗한 속성은 잠시뿐.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이 녹아 질척이는 도로는 비 온 뒤 거리보다 더 지저분합니다. 

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린 흔히 꽃을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인식합니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눈을 좋아하듯 지금도 꽃을 무척 좋아합니다. 이번 생일에 딸로부터 아름다운 꽃 선물을 받았습니다. 낭만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남편에게 결혼기념일마다, 생일마다 꽃 한송이 안 사온다고 툴툴대던 모습을 보아서인지 커다란 꽃바구니를 준비했더라고요. 그러나 꽃도 아름답게 피어있는 순간은 정말 잠시이고 시들면 세상 그 무엇보다 추하고 냄새도 고약합니다. 

이렇게 세상 모든 것은 아름다움과 추함, 깨끗함과 더러움이라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지요. 그리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아름다움과 추함이 자리를 바꾸며 모습을 드러냅니다. 올겨울 흰 눈을 자주 만나고, 생일에 딸에게서 받은 꽃이 시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새삼 그 양면성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인식은 굉장히 단면적입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이분법으로 딱 나누어 놓고 모든 존재를 그중 하나의 범주 속에 분류하려 합니다. 우리 자신도, 세상 그 무엇도 양면을 다 지닌 존재라는 걸 잊고 말입니다. 특히 요즘 총선 정국에서 각 정치 세력이 서로 상대 세력의 추함을 드러내어 손가락질하고 마치 자신들은 깨끗한 척, 아름다운 척하는 모습은 참 우습기만 합니다. 

셰익스피어는 “아름다운 것은 추하고, 추한 것은 아름답다.”(Fair is foul and foul is fair.)는 아리송한 대사를 통해 모든 존재가 지닌 양면성과 가변성, 또 관점의 차이를 우리들에게 알려줍니다. 처음 이 대사를 읽었을 때 그 난해함에 당혹감을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 아니 이게 말이 되기는 하는 소리인가? 어떻게 아름다운 게 추하고, 추한 게 아름다워?’하고 의아해했던 것 같습니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가운데 하나인 『맥베스』에 나오는 이 대사는 맥베스에게 장차 왕이 될 거라는 예언을 하여 그가 왕을 시해하고 왕권을 찬탈하게 만든 세 마녀가 한 말입니다. 마녀들은 극이 시작하자마자 아직 맥베스가 무대에 등장하기도 전에 먼저 무대에 나와서 독자/관객에게 이런 수수께끼 같은 말을 던지고 사라집니다. 그런데 이 극을 깊이 연구하다 보니 놀랍게도 이 극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역설이 진실임을 보여주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맥베스는 극 초반에 역모를 진압하고 개선하여 왕으로부터 영지와 작위를 하사받는 충신으로 등장합니다. 그런 맥베스는 개선하는 길목에서 장차 왕이 될 거라는 마녀들의 예언을 듣게 됩니다. 이때부터 맥베스 마음에 역심이 생겨나고 그는 결국 왕을 시해하고 왕권을 찬탈하는 역모자가 됩니다. 극 초반에 역모자의 목을 베어 효시(梟示―아주 큰 죄를 지은 사람의 목을 베어 매달아 군중 앞에 공시하는 일)했던 맥베스는 극이 끝날 무렵 맥더프라는 장수의 손에 목이 베여 효시가 됩니다. 이 극은 이렇게 극의 시작과 끝이 똑같은 수미상관(首尾相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 독특한 극 구성을 통해 셰익스피어는 ‘충신’이 ‘역모자’가 되고, 아름답던 존재가 추한 존재로 변모하는 걸 보여줍니다. 맥베스의 마음속에는 충성심과 권력을 향한 야심이 모두 존재하고 있었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른 속성이 드러난 것입니다. 

맥베스가 그토록 갖고 싶어 했던 왕관과 왕좌도 손에 넣기 전에는 그토록 아름답게만 보입니다. 그러나 막상 차지하고 보니 그를 불안하게 만들고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가시관이요, 가시방석이 됩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맥베스는 정적(政敵)을 숙청하면서 점점 살인마가 되어갑니다. 왕관과 왕좌를 얻으면 행복하리라 믿었지만 그것들은 맥베스를 불행 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맥더프라는 인물도 시사하는 점이 있습니다. 그는 맥베스가 왕을 시해했다고 의심하여 그를 군주로 모시기를 거부하고 시해당한 왕의 큰아들인 맬컴 왕자의 군대에 합류합니다. 맥베스는 그의 역모에 분노하여 어린 아들과 하인까지 온 가족을 몰살합니다. 죽기 전 아들은 엄마에게 아버지가 역모자이냐고 묻습니다. 맥더프는 과연 역모자일까요? 그건 누구의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맥베스 입장에서 볼 때는 역모자이지만, 정통 왕권 입장에서 볼 때 그는 오히려 충신입니다. 즉 맥더프라는 인물은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충신도, 역모자도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셰익스피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올바른 눈은 편협하지 않고 열려있어야 함을 배웠습니다. 그런데도 나의 눈은 자꾸 어리석게도 사시가 됩니다. 한쪽으로 쏠려 판단하고, 규정하고, 호불호를 정하려고 합니다. 그러다 녹은 눈과 시든 꽃, 그리고 우스운 정치 집단들의 손가락질을 보며 불현듯 다시 사시를 바로잡아 봅니다. 얼마 못 가 또 한쪽으로 쏠리겠지만 말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필자의 개인 의견이며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권오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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