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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건국전쟁 나선 실버 아미

기사승인 2024.02.07  03:3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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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개봉한 영화 ‘건국전쟁’을 꼭 보시길 권합니다. 이 나라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를 걱정하시는 분이라면 정말 보시기 바랍니다. 이 나라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건국 과정을 아시는 분은 그 지식을 더 단단하게 하기 위해, 모르시는 분은 그 무지를 깨치기 위해 보셔야 합니다. 

 
  건국전쟁 포스터 

1.이 영화는 ‘폄훼당해 온 건국 대통령 이승만(1875~1965)의 생애를 되살려낸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짜인 줄거리를 따라 재미있게 구성된 극영화와는 달리 있는 자료, 있었던 사실을 펼쳐 놓은 다큐멘터리이니 손에 땀을 쥐거나 가슴 졸이며 볼 만한 ‘극적 재미’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한국의 현대사가 왜곡된 과정을 잘 보여줍니다.

영어 제목이 ‘The Birth of Korea’인 이 영화는 대한민국의 탄생 전후, 그 주역이었던 이승만의 공과(功過)를 다룹니다. 영화는 그가 아니었다면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존재할 수 없음을 국내외 이승만 연구자들과 주변 인물들의 증언, 영상, 기록 같은 걸로 밝혀냅니다. 이런 것들을 보여주면서 이승만은 공이 과보다 말할 수 없이 큰 인물이었다고 결론 내립니다. 영화에서 확인한 그의 공 몇 가지를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겠습니다. 

토지개혁 이승만은 토지개혁을 시행, 농지를 지주들에게서 몰수해 실제 농사를 짓는 사람들(소작농)에게 나눠줬다. 자기 땅을 갖게 된 농민들은 그 땅을 뺏기지 않기 위해 6·25 때 죽기를 무릅쓰고 적과 싸워 물리쳤다. 지주들에게 지급된 농지 대금은 산업자본으로 전환돼 대한민국 산업화의 초석이 되었다. 북한 김일성도 토지개혁을 했으나 토지의 주인이 지주에서 국가로 바뀌었을 뿐 논밭에서 나오는 소출이 온전히 자기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북한 농민의 처지는 전과 다름없는 소작농이었다. 

교육 투자 이승만은 먹고살 것이 부족했던 그 당시, 정부 예산의 20%를 교육에 투자하고 대대적인 문맹퇴치운동을 벌였다. 그 결과 80%를 넘었던 문맹률이 20% 이하로 떨어졌으며, 의무교육은 한국의 산업화를 앞당기고 경제발전을 촉진하는 밑바탕이 되었다. 당장 배가 고팠지만 고기를 나눠주지 않고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친 이승만 덕분에 우리는 배를 곯지 않는 처지에 이르게 됐다. 

여성 권리 인정 1948년 5월 10일, 건국을 위한 대한민국 최초의 투표에서는 여성들도 한 표의 권리를 행사했다. 유럽의 선진국인 스위스가 여성 투표권을 허용한 것은 이보다 2년 뒤였고, 프랑스 여성들도 2차대전이 끝난 뒤에야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이승만은 하와이 호놀룰루에 머물면서 독립운동을 할 때는 여성 기숙학교를 세워 한국 여성들이 세계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도록 가르쳤다.

2. 이외에도 영화는 반공포로 석방과 한미방위조약 체결 등을 둘러싼 이승만의 결단을 다룹니다. 이승만의 이러한 결단이 아니었다면 대한민국은 두 번째 남침을 못 면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뒤따릅니다. 

영화는 “그렇다면 왜 이승만은 지금까지도 독재자, 살인마라는 손가락질을 받고 있나, 왜 다른 나라는 기념관이나 동상을 자국에는 물론 해외공관 앞에까지 세워 건국 대통령을 자랑하고 기념하고 알리는데 왜 우리에게는 그런 게 없느냐”라는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 나섭니다. 그 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북한의 지독하고 끈질긴 공작-이승만을 악마화해서 한국 사람의 머리에서 이승만을 지우겠다, 그리해야 한국의 적화가 쉬워진다는 그들의 전략에서 비롯된-때문이며, 둘째는 북한의 공작에 알게 모르게 넘어간 남한 지식인들과 언론의 악의와 왜곡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것들이 아니고서는 4.19로 하야한 직후 30일짜리 단기 비자로 출국한 그가 5년이나 하와이에 머물다가 돌아오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된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겁니다. 그가 하와이로 망명할 때 당시로는 상상할 수 없는 거액을 숨겨 가져갔다는 한 신문 기사가 이런 악의와 왜곡의 대표적 사례로 스크린에 뜹니다. 타이프라이터와 옷 가방 등 짐 네 덩어리만 달랑 들고 하와이에 도착했으나 머물 곳이 없던 이승만은 한 동포가 자기 집을 내놓자 그냥 받을 수 없다며 서울의 자기 집-이화장-을 넘겨주겠다는 각서를 써줬습니다. 부인이 밥상에 고기를 구워 올리면 화를 냈다고 합니다. 그 돈 아껴 한국으로 돌아갈 여비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말입니다.

국가 수립 후 친일파를 등용했다는 것, 6·25 때 시민들에게는 서울에 남아 있으라고 하고 정작 자신은 남쪽으로 달아났다는 것, 피란민이 줄지어 다리를 건너고 있는데도 한강철교를 폭파하라고 지시, 수많은 인명이 희생됐다는 것,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른 독재자였다는 것 등등 그를 비난할 때 빠지지 않는 이 모든 것이 모두 근거 없음을 영화 건국전쟁은 까밝힙니다.

3. 사실 이승만의 삶과 인간성 업적은 근래 십수 년 사이 부쩍 늘어난 그의 전기나 연구논문, 강연으로 꾸준히 재조명되어왔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사실 대부분은 그의 전기나 그의 삶과 정책을 다룬 유튜브-나는 이인호 전 서울대 사학과 교수의 한국 현대사 강연 유튜브를 봤습니다-를 보면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런 것들을 읽고 본 분들은 이제부터 내가 말씀드릴 영화관 풍경-영화 외적인 이야기-에 더 관심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이 영화를 일요일인 지난 4일 봤는데 영화관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상영관이 드물었습니다. 걸어갈 만한 곳에 영화관이 두 곳 있고 전철 한 정거장만 가면 되는 곳에도 영화관이 있지만 건국전쟁을 상영하는 곳은 없었습니다. 검색해서 찾아낸 이웃 동네(마을버스 한 번, 전철 두 번) 영화관에서 봤습니다. 상영관 찾기 어려웠던 건 이런 영화-보수성이 진한 영화-는 돈이 안 된다는 장삿속 때문이겠지요. 보수층은 책 안 읽는 건 물론 영화도 잘 안 보는 게 사실일 겁니다. 

3분의 2가량이 찬 좌석에는 대부분 노인이 앉아 있었습니다. “건국 1세대에게 이 영화를 바칩니다”라는 마지막 자막이 흐르자 이 중 누군가가 박수를 쳤고, 나도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박수를 쳤습니다. 영화 보고 박수 치기는 '쌍팔년도' 영화 ‘빨간 마후라’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바깥으로 나오니 로비에 노인들이 많았습니다. 정황상 이 영화 보러온 사람들이 분명했습니다. 부부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학교 동기이거나 형제자매인 듯 예닐곱씩 서서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4. 며칠 전, ‘실버 아미 Silver Army’라는 신조어가 잠깐 나돌았습니다. 군 복무를 마친 여성만 공무원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한 정치인의 주장에 “병력 부족을 걱정하는 것이라면 여성들보다는 노인들을 다시 군대 보내는 게 더 좋은 아이디어”라며 한 교수가 반박하자 네티즌 누군가가 “‘실버 아미’를 만들자는 거냐?”라고 되물어서 잠깐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신조어이지요.

나는 건국전쟁을 보러 버스와 전철 갈아타고 나서는 노인부대가 실버 아미라고 생각합니다. 이 실버 아미는 이 영화를 보는 걸로 ‘제2 건국전쟁’에 나선 겁니다. 내 말뜻을 잘 모르겠다는 분은 이 영화를 보십시오. 지나간 세월이 주르르 지나가며 대한민국이 지금 같은 처지-극도로 분열된-에 놓인 이유를 알게 될 겁니다. 좌파에게 빼앗긴 영역을 되찾으려면, 왜곡을 바로잡고 역사를 바로 세우려면 우선 이 전쟁, 문화전쟁이라고도 불리는 ‘제2 건국전쟁’에서 이겨야만 합니다.

이 영화관에서는 작년 11월에 개봉, 누적 관객 수가 1,308만 명이 넘는 ‘서울의 봄’도 상영되고 있었습니다. “극적인 재미를 위해 허구를 섞었다”지만 사실을 왜곡한 부분이 적지 않아 한국 좌파의 입장을 대변한 게 아니냐는 말을 듣는, 그래서 건국전쟁과 대척점에 있다고도 할 수 있는 ‘서울의 봄’ 흥행 성공에는 좌파단체는 물론 그 관계자들이 학생들까지 동원해 단체로 보게 하고 예매도 해줬기 때문이라는 기사도 있었습니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애국노인'들이 건국전쟁을 보러 뭉치지 못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애들은 이런 영화 안 좋아해. 애들도 좋아할 감성 넘치고 재미난 영화를 만들어야지. 다큐멘터리로는 문화전쟁 못 이겨"라는 분들도 있더군요.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자꾸 하다 보면 극적 재미 철철 넘치는 ‘건국전쟁-한국의 탄생’ 영화를 '국뽕 냄새' 안 나도록 만드는 애들이 왜 안 나오겠습니까? 

자유칼럼의 글은 필자의 개인 의견이며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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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숭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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